연극철지남_온라인프로그램북

2024. 8. 14. 11:1924_연극철지남

 

상상만발극장 1

연극철지남

조서연 개념,연출
공동구성
 
2024.08.16.-18.
신촌 일대

 


순서

철지남
거리에서
흔적들
창작진
상상만발극장


철지남

연극은 시간을 총체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일입니다. 과거에 쓰인 텍스트가 극장으로 도착하기까지의 시간, 프로덕션의 구성부터 연습 과정을 거쳐 관객을 만나기까지의 시간, 그리고 공연이 시작한 시점부터 끝날 때까지 흘러가는 시간까지. 연극이 탄생하는 시점부터 ‘지금-여기’가 되어가는 과정 사이에는 무수한 시간의 격차들이 존재합니다. 이 모든 격차들 사이에서 ‘철지남’이 발생합니다.

동시에, 연극은 창작 중에나 공연 중에나 ‘나’에게서 ‘당신’으로, ‘당신’에게서 ‘나’로 도달하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작업입니다. 내가 통과하고 있는 시간과 당신이 통과하고 있는 시간 사이에는 격차가 존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여기’를 공유하고 있는 와중에도 ‘철지남’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연극은 모든 ‘철 지난 것들’의 총체입니다.

우리가 연극에서 마주하는 ‘지금-여기’를 잠시 들여다보면, 무수한 시차들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일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철지남’을 발견한다는 것은 곧, 내가 어떤 시공간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지, 내가 존재하는 곳이 어째서 ‘지금-여기’일 수 있는지 다시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지금 나와 같은 장면을 공유하고 있는 저 사람의 시간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고, ‘지금-여기’에는 하나가 아닌 수백 개의 시간이, 아니 수치화 할 수 없는 시간의 단위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지금-여기’를 가늠할 수 있는 주체는 오로지 ‘나’뿐입니다.

이제 ‘철지남’은 연극에서 다뤄지는 ‘동시대’ 문제의식들과 연결됩니다. 연극에서의 ‘지금-여기’를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나-관객’만이 가늠할 수 있다면, ‘동시대’에 대한 판단 역시 ‘나-관객’이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창작 주체에 의해 제시된 ‘동시대’가 존재한다면, 이에 대해 수많은 가지로 뻗어나갈 수 있는 관객의 ‘동시대’ 또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연극을 보러 모인 우리는, 모인 이 자리에서 우리의 ‘동시대’를 합의해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철지남’은 연극에 내재된 속성으로 고안된 개념이지만, 상상만발극장1은 이 개념을 보다 확장된 차원에서 공유하기 위해 도시에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도시의 거리는 무수한 ‘철’들이 쌓여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 ‘철지남들’이 도시를 누빌 때 마주하는 모든 것들을 이루고 있지만, 너무나 일상적이고 당연하기에 눈여겨보지 않게 되는 곳들 중 하나입니다. 일종의 비일상성을 만드는 극장이라는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철지남’이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적합한 장소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철지남’은 계속 어디론가 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잠시 멈춰 서 있을 때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니까요. 


거리에서

1.

 
조서연 연출의 ‘철지남’이라는 아이디어는 시간이 하나로 뭉쳐지지 않은 다중의 줄기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감각하게 합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백화점을 같이 걷는 시간을 다양한 줄기로 분화해보고자 했습니다.


공연을 위해서 만났다는 공통이해를 가지고 만난 관객과 화자는 공연이 시작되고 한 동안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며 걷게 됩니다. 걷는 두 사람은 백화점이라는 거대하고 정확한 목적을 가진 일상적 공간에 들어섭니다. 그 공간에서 화자는 갑자기 합의되지 않은 시간으로 들어간 대화를 시작합니다. 


대화는 유리에 관한 장광설이며 백화점에서 으레 진행할만한 주제에 완전히 부합하지도 않고 완전히 무관하지도 않아 비스듬하게 걸친 주제가 됩니다. 일상도 아니고 비일상도 아니고, 상식도 아니고 비상식도 아니게 비스듬히 걸친 시간을 함께 하며 관객이 당연하게 평평해진 시간을 낯설게 감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체도, 액체도, 기체도 아닌, 비정질(Amorphous)이라는 말 그대로 모호한(Amorphous) 상태로 존재하는 유리라는 주제는 이 비스듬하게 걸친 시간에서의 걷기를 환유하고 당연하게 결정화된 백화점에서의 시간을 다중으로 퍼트리도록 합니다.

-김상훈


2.


철 지난 것들을 찾아 거리를 걷다 보면 여러 흔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철이 각자의 방향으로 지나며 거리에 남긴 흔적입니다. 그리고 그 거리 한복판에 가장 부지런히 그 흔적을 지워내고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맥도날드는 연중무휴 24시간 운영하며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들이 드나듭니다. 하지만 맥도날드에서 우리는 거리를 지나는 어떤 철도 감각할 수 없고, 그 철이 남긴 어떤 흔적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만큼은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철을 지나고 있는지를 잊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무시간성’의 공간은 우리의 거리 곳곳에 존재하며,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떠한 철도 흔적을 남기지 못하는 이 ‘무시간성’의 공간에서 관객은 창작자를 만납니다. 어디에 있는지, 어떤 철을 지나고 있는지 잊고, 서로 나누는 대화에 집중하다 보면 우리가 보낸 시간은 하나의 철이 되고, 종이 위에 쌓인 대화는 그 흔적이자 증거가 됩니다. 

-이라임

 

3.


어느 새 어제가 되고, 어느 새 작년이 되는 시간선 위에서, 우리는 대부분의 철들을 지나는지조차 모른 채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 무수한 철지남들을 뒤로 하고 밀려드는 현재를 헤쳐 나가기도 바쁠 때, 바로 그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존재하는지 헷갈리는 순간. 방금 나를 지나쳐간 것들과, 내 곁에 있던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영영 잃어버리게 되는 순간.

내가 계속 가야 한다고 믿었던 시간선에서 잠시 벗어날 때, 이건 사실 선이 아니라 거대한 공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 나는 잠시 거리에서 우뚝 멈춰 섭니다. 그리고 벽을 타고 자라난 넝쿨의 기이한 생김새를 봅니다. 길에 던져진 쓰레기가 얼마 동안 그곳에 있었을지 생각하고, 무슨 이유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간판이 나란히 서 있게 된 것인지 궁금해 합니다.

내가 지나온 시간에 있었을 것들과, 앞으로 지나갈 시간에 있을 것들과, 그렇게 어떤 ‘철’로 기억되거나 기억되지 못할 존재들이 모두 이 거리에 있습니다. 각자의 시간대로 존재하는 이 거리에서 나는 나의 시간을 새롭게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그 간격들을 가늠하며, 그 간극을 이해하며. 수화기 너머의 당신과 내가 이 거리를 함께 걸을 수 있는 것처럼. 

-조서연

 

+

 
우리는 각자의 철 위에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철들은 일치하지 않은채로 서서히 지나가지만, 그나마 그렇게 지나가는 속도마저 일치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도시, 거리의 뒷 골목에는 그 일치하지 않는 철들이 공존해온 흔적이 쌓여있습니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들을 연결하는 철지난 마을, 신촌(新村) 골목 구석 구석에서 120년 전에 씌어진 연극 <벚꽃동산>의 말들을 만나봅니다. 우리의 거리들처럼 우리의 연극들도 일치하지 않는 철들이 서서히 제각각 지나가는 흔적들이 종횡으로 엮여 쌓이고 있습니다.

-박해성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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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진

개념, 연출, 퍼포머 조서연
연출 <곰이 말했다>
공동창작 <역사탐험연구소>, <연극 안 하기 - 연극 했다고 치기>
조연출 <그것은 너의 말이다>, <미래의 동물>
 
공동구성, 퍼포머 김상훈
연출 <히라타 오리자를 위한 유튜브 스크립트>, [연극 안 하기] 연작, <비둘기처럼 걷기>
극작 <미래의 동물>,  <화성은 수원에서 하나도 안 멀다>
 
공동구성, 퍼포머 이라임
무대감독 <그것은 너의 말이다>, <오차의 범위>, <커튼>, <미래의 동물>
 
공동구성 박해성
연출 <그것은 너의 말이다>, <역사탐험연구소>, <은하철도의 밤>, <미래의 동물>, <스푸트니크>
 
무대감독 김현
배우 <그것은 너의 말이다>, <역사탐험연구소>, <낮은 칼바람>, <미래의 동물>, <천만 개의 도시>


상상만발극장

극장에 있는 관객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배우들은 극장에서 어떤 존재가 되는지,
이들이 만나는 극장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극장은 어떤 곳인지에 대한 탐구에서 우리의 연극은 시작됩니다.
극장에서 우리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지금의 세계를 집요하게 응시합니다.
2008년부터 창작을 이어온 유연하고 역동적인 작업공동체입니다.

상상만발극장1: 극장의 최소단위를 실현합니다.
상상만발극장2: 극장의 가능성을 확장합니다.
상상만발극장3: 집중된 창작의제를 통해 극장의 맥락을 다시 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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